기도하는 마음과 kt노조

 

‘기도하는 심정으로……’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한 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럴 때의 ‘심정’이라는 의미는 자신이 세속적으로 원하는 것이 이뤄지기를 하나님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합격을 원한다면 이는 다른 사람의 불합격을 초래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기복적인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선 다 똑같은 자식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수 있는 기도는 어떤 것이여야 할까요!

기도란……! 결국 마음을 바꿔 현실적 복합적 환경에 적응토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환경이 바꿔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환경은 바뀌지 않습니다. 기도는 마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술은 결국 속임 수 이기에 절대 기도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환경이 아닌 기도하는 자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어려움에 처한 환경을 통해 거기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합니다. 자아를 내세우며 자신의 힘으로만 이를 해결하겠다는 몰입된 상태에선 길은 보여질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하나님의 뜻이 오롯하게 보여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보여진 그 길로 가면 해결의 복을 받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의 집착적, 주관적으로 몰입된 닫혀진 위치로부터 개방되고 유연한 객관적이고 중용적인 위치로 마음을 이동시키게 됨으로써 넓고 입체적인 시야의 확보를 통해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하나님이 무엇을 주는 게 아니고 깨닫고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한 깨달음의 실천이 있어야 하나님은 결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무아의 경지로 이끈 후, 이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 다음 순종케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버려야, 나를 낮춰야, 진실로 감사를 해야 길이 보이고 이 때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며, 그러니 이의 실천을 곧 순종이라 할 것입니다. 깨달음에 의한 복종을 순종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님 말씀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그 게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된다면 이를 받아들인다는 순도가 가장 높은 순종의 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 말 또한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극치였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어떤 특정한 모습이나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감아야 하는 게 기도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든 생각을 기도하듯 해 보십시요!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저는 늘 기도합니다. kt에도 민주노조가 들어서길 기도합니다. ‘민주화’란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요즘 대법원의 최종판결 취지에 정면 배치되는 대 조합원활동들을 전국적으로 벌이는 현집행부의 행태를 보면서 시대정신인 촛불정신과 민주화를 부정 왜곡하는 듯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실천들에 자괴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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