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개독이 늘어나는가?

왜 자꾸 개독이 늘어나는가?

근래에 우린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목사직 세습사건과 만민중앙교회 담임목사의 여성신도 성추행사건들을 접하면서 언론과 주변을 통하여 많은 개독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들이 누적되면서 교인 수도 줄어든다는 얘길 들을 수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를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의 의미를 곡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독교인 여부에 관계 없이 사람들은  “기독교는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용서받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면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면서, 회개와 반성을 같은 의미로 본다는 것입니다. 구별을 못하는 것이지요! 저도 늘 무조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무책임성에 아주 큰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ㅇ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 18:21)

ㅇ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22)

상기 말씀에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분명하게 명시돼 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을 때 7*70=490번 용서하라고 돼 있습니다만 당시 의미로써는 무조건 용서해주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용서 자격은 바로 ‘형제’라는 단어에 숨겨져 있습니다. 형제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로부터 DNA를 공유한 육체적 형제가 아닌 성령을 공유한 형제를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성을 받은 사람을 서로 형제라 부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인 것이지요!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이 말씀에서 죄를 용서받는 사람의 자격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은 따라서 하나님의 눈치를 늘 보고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용서는 내가 아닌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용서는 성경말씀처럼 ‘형제’에게만 국한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도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그래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그렇기에 오만방자한 사람들의 죄는 절대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반성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반성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성은 나에게 나의 잘못을 고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시적이고 일관성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성이 아닌 회개를 해야합니다. 회개는 나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잘못을 내가 아닌 하나님에게 고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뉘우침을 신뢰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고난과 고통의 종교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짐을 느끼게 해 주는 성향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 성향을 도리어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 고난 없이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듣기 좋고 또한 쉬운, 그래서 그저 위로가 되는 설교를 하는 목사와 교회를 찾게 됩니다. 거기서 아무리 죄를 지어도 용서가 되는, 그래서 특권적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리사욕에 멍든 가슴을 기도 한방으로 용서받고 이어서 또 죄를 짓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개독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저 두 교회를 보시면서 우린 저 목사보다 신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은 진정한 회개가 뭔지도 모르며, 여전히 자신의 주인은 잘난 자신들이라 생각하고, 구원을 받는다며 헌금을 하게됩니다만, 슬프게도 자신도 모르게 헌금이 투자금이 되고 모시는 목사님은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돼 일부는 신자가 아닌 주식회사의 임원으로 둔갑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절대 원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짐을 한탄하겠지만 이는 자신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바꾸지 못한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회개를 통해 진정으로 구원시키지 못한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클 것입니다. 그저 등록 신도 수를 늘리기 위해 듣기 쉽고, 재미 위주의 보여주기식 설교, 즉 상품을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교회 신도를 일개 상품 구매자 또는 주주들로 전락시킨 것이지요! 그러니 이 또한 개독들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일반화시켜서 의미를 확장시키면 내 마음 속에 하나님과 불성과 양심이 없이 죄를 저지르면 절대 용서를 못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가 아닙니다.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 아닌 이상, 죄는 절대 용서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교회를 주식회사로 만들고, 헌금을 투자금화 하면서 목사를 대표이사화 한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는 불가한 종교입니다. 하물며 공자님도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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