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식민지와 비정규직, 그리고 화력발전소의 젊은이의 죽음!

내부식민지와 비정규직, 그리고 화력발전소 젊은이의 죽음_20181213

 

또 젊은이가 비참한 과정을 거쳐 죽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을 넘어 비통하기가 이를 때 없을 뿐입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고 만 것일까요! 누구나 다 이런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 다소의 죄의식까지 함께하면서 더욱 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그야말로 진흙탕적 정글싸움 그 자체 입니다. 어쩌면 일반 짐승과 사람이 다를 바 없음을 숨기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겉 모양과 사용되는 단어들이 그럴싸 할 뿐이지 야만적 짐승들의 싸움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표독스럽기만 합니다. 단지 인간이 짐승과 차별을 둘 수 있을 경우는 민주주의 방식에 의거 자본주의가 적절하게 통제 관리되면서, 한 쪽에만 쌓일 수밖에 없는 부를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짐승보다 되려 더 못하게 됩니다. 인간은 뛰어난 머리를 짐승스러움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는 없어졌지만, 안타깝게도 자본주의는 그 식민주의적 역할의 담당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무한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그렇기에 정부는 가진자로부터 세금을 거둬 보살펴야 합니다. 그런 안정적 주고 받음을 기반으로 사회는 부를 쫓는 인간들의 본능적 탐욕을 기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어 이른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비정규직, 일용직 등은 제국주의시대의 식민지 국민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내부식민지의 피식민인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양식있는 또는 양심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희생에 기반을 둔 현재의 삶을 몹시 마음 아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병든 자들은 그들의 아픔을 보면서 즐기는 자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비정규직은 지난 IMF시절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IMF의 요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쉽게 말해 비정규직을 만들지 않으면 IMF가 돈을 필려주지 않는다 하였죠! 그럴듯 하게 표현하면 노동 고용의 유연성 확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착취인데, 이렇게 그럴듯한 용어를 쓰게 되니 알면 알수록 그 기만성이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꿈도 많았을 젊은이가 자신의 부모에게 조차도 진실을 알리지 않고 뼈빠지게 저임금 중노동 고위험 노동을 하면서 또 한편으론 단지 죽지 않게만 해 달라고 시위를 하는……, 그 모습을 보는 같은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절대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양심과 깨달음이 밀려올 때면 그저 눈을 감고 그 죄 사함을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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