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부도의 날을 보고

MBC 피디수첩의 ‘통신 부도의 날’ 을 보며……20190110

 

IMF 요구에 국가기간시설들을 해외에 팔고 거의 20년 가까이 최적화와 효율화를 부르짖으며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끝 없는 줄세우기 경쟁과 노조 파괴의 공작을 격으면서 인심은 메말라 가고 사람은 도구화 되는 가시밭 길을 걸어 왔습니다. 상생의 가치로 경쟁의 상처를 아물게도 해야 했을 터이지만 도처에 승패의 논리만 횡횡하는 정글게임의 살벌함이 삶을 갉아 먹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의 통신구는 하수구 그 자체였습니다. 통신구가 하수구 노릇을 해야 하니 얼마나 더럽고 지저분 하겠습니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통신구가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음을 고려하면 다양한 사고들이 언제 터져도 터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겉으로 인자한 척 미소는 짓지만 악마가 마음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통신구는 그렇게 지하에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 스트레스 순위 4등이라는 실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300명이 일시에 명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던 사건을 “실직은 곧 죽음과 같다”는 의미로 되짚으면서 그것은 곧 몰인간적 살상적 행위였음을 부각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기업 실적은 좋아졌으나 그 모든 부담을 사회로 떠넘기고, 남은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드높임과 동시에 시설 유지보수 등의 투자를 최소화시키면서 달성한 것이었을 뿐이지,기업 고유의 아이디어 개발을 통한 서비스 개선 및 창출로 얻어진 게 아님이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삼성전자의 백혈병환자들을 본격적으로 발생시키며 이를 방치 및 회피한 행위들이 열거되고, kt에서의 초대형 실직사태 초례 등이 함께 보여지면서 쫓기는 그 모습이 얹혀지자 떳떳하지 못했던 한 인생의 씁쓸한 뒷모습이 그저 초라하고 불쌍하게만 보였습니다. 그 지긋한 나이에 아직도 지혜를 얻지 못하고 ‘돈이나 지식같은 것들의 소유에 칩착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왔습니다. 그 누가 봐도 이젠 살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이승의 떠남을 맞이하기 위한 덜어냄의 삶을 본능적으로라도 추구했을 법한 나이이지만 도리어 역방향적 삶을 사는 이유가 뭘까 생각케 하였습니다.

 

특히 옥상 출입문을 폐쇠시키면서까지 강압적 명퇴를 실행했음을 보여주는 화면에서는 투신 자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행했다는 지점에 이르면 살인마와 다를바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어용노조와 함께 사측이 토끼몰이식 강압적 환경을 조성하고 명퇴를 요구하자 마치 사람들은 불난집에서 뛰쳐나오듯 명퇴에 동의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폐적 싸이코패스적 인간형은 그 스스로 행한 행위의 문제점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백혈병을 유발시키며 젊은 청년들이 죽어 나가든, 아니면 8,300명이 갑자기 실직되는 사회적 죽음을 당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그 결과 공중파를 통해 그 악폐가 들어났고, 더군다나 유튜브 등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각종 매체와 기억정치 등을 통해 영원히 유포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면 결국 그 주인공은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에 수감된 것과 같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됐음을 현실로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무감각한 사람이라 해도 “미친 개라 할지라도 몽둥이는 통한다”는 현실에 맞닦트릴 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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