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초연결’사회, 대형사고의 허점

2018.12.17주간경향 1306호
[특집]‘초연결’ 사회, 대형사고의 허점

ㆍ통신·전력·수도·교통망 등 촘촘해져 한 번 터지면 피해 다른 영역으로 확대

도시는 밀집의 공간이다. 인구만 집중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생활을 돕는 다양한 인프라 역시 갈수록 촘촘해진다. 그러나 통신이나 전력·수도·교통 등 각종 인프라가 엮어내는 망이 더욱 촘촘해질수록 재난이나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 입는 피해의 범위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회기반시설을 관리·통제하는 데 활용되는 네트워크의 영향이 커지면서 한 영역의 사고가 다른 영역으로 이어지며 피해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11월 25일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11월 25일 경찰 및 소방 관계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CCTV 감시·대응 인원의 한계

“CCTV 카메라는 상당히 빽빽하게 설치돼 있다. 문제는 카메라로 전송되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수십 개의 모니터에 나타나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눈은 단 두 개뿐이라는 점이다.” 국가기반시설로 분류되는 한 기관의 보안업무 용역을 맡고 있는 민간 보안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CCTV는 이미 국가의 주요시설은 물론 민간 사업장이나 일반가정에서도 범죄·사고 예방과 보안 목적으로 보급돼 ‘제2의 눈’ 역할을 하고 있다. 보안이 필요한 시설 주요지점에 설치된 CCTV 카메라로 찍힌 실시간 영상은 전담요원이 상시 감시하고 있는 통합관제실로 전송된다. 필요한 경우 먼 거리에 떨어진 기관의 본부나 지휘통제 부서로도 바로 전송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가 일어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사람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1~2명에 불과한 관제인력만으로는 무단침입이나 시설파괴와 같은 각종 사고에 즉각 손쓰기 어려운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없이 작동되는 감시설비를 유지·관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수와 예기치 못한 비상시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의 수가 차이나는 점은 어쩔 수 없는 딜레마다.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운 사고에 대비해 배치할 상근인력의 규모를 정하는 것은 공공영역이건 이윤이 목적인 기업이건 모두 쉽게 결정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라고 가정한 사고나 재난이 일어날 경우 현장뿐만 아니라 정부 시스템이나 도시의 생산활동 전반에 파급이 미친다면 대비 수준은 더욱 높아져야 할 수밖에 없다. 공적 영역의 안전과 보안을 외주화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이미 ‘국가중요시설’을 방호하는 업무가 용역업체에 외주화된 것은 일반적이다. 공항과 철도, 발전소 등 국가안보는 물론 시민들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중요시설’ 방호업무의 전부 혹은 일부가 용역업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 댐과 발전소 등 34개 국가중요시설을 운영하는 한국수자원공사 등 외주 방침을 철회하고 방호인력 정규직화를 완료한 곳도 있지만, 가장 높은 등급인 ‘가’급 국가중요시설인 인천국제공항을 관리하는 인천공항공사의 경우처럼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작업에 진척이 더딘 곳들도 상당수다.

국가중요시설은 통합방위법에 따라 국방부가 관계기관과 함께 지정하는 시설이다. 국가안보 목적을 최우선으로 공공기관, 공항, 항만, 주요산업시설 등 적에 의하여 점령 또는 파괴되거나 기능이 마비될 경우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 등급에 따라 지정된다. 전문성을 띤 민간업체에 용역을 맡기는 것 자체를 문제라 하긴 어렵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들 용역업체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인 특수경비원에게 방호업무를 맡기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공공기관에 직고용된 정규직 청원경찰과 달리 이들 특수경비원은 처우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난다. 공공비정규직노조 관계자는 “외주화의 문제는 단순히 특수경비원의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라거나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점을 넘어 말 그대로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KT 아현지사 지하통신구 화재로 대규모 통신 장애가 발생한 사태 역시 인력과 비용을 감축하려는 외주화가 배경에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KT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는 구조조정에 주력해 오면서 안전 문제는 도외시한 결과가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KT가 이번 사태와 관련된 케이블 관리 업무 등 핵심 업무들을 하청업체에 도급으로 넘겼다며 “KT 본사 소속으로 통신케이블을 관리하는 케이블매니저 팀이 있지만 대부분은 본사 직원이 아니라 하청업체에 넘겨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민영화 과정을 거친 KT는 약 6만명에 달하던 정규직 직원 수를 구조조정을 통해 2017년 말 기준 2만3420명으로 줄였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은 비정규직인 하청업체 직원으로 대체했다. 조 위원장은 “안전 관리를 담당하는 케이블매니저 팀이 대폭 줄어 이번에 화재가 난 뒤에도 하청업체에서 나와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일상적인 안전 관리는 물론 사고 대처까지 외부 업체에 맡기면서 신속한 대응을 놓치는 문제가 그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외주 용역업체의 비용절감 여파

외주화의 필연적 결과인 용역업체의 비용절감이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번지는 것은 통신분야의 문제만은 아니다. 11월 20일 충북 오송역에서는 전기 공급이 끊겨 KTX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3시간 넘게 깜깜한 열차 안에서 무작정 대기해야 했던 사고가 벌어졌다. 일부 승객들이 하차를 요구했지만 승무원들이 받은 안전교육이 비상사다리 설치나 심폐소생술에 그쳤기 때문에 단전사고에는 매뉴얼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것으로 전해졌다. KTX 열차에는 코레일 소속 팀장 1명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승무원 2명이 탑승하는데, 문제는 팀장이 소속이 다른 승무원에게 안전업무 지시를 내리면 불법파견이 되기 때문에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12월 4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 인근에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이 터지는 사고로 시민들이 화상을 입고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4일 경기 고양시 백석역 인근에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이 터지는 사고로 시민들이 화상을 입고 도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7일 경기 고양시의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화재가 났을 때도 2001년 민영화된 송유관공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근무인력을 줄인 것이 결과적으로 큰 사고로 이어졌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에 따르면 화재 당시 근무자는 4명에 불과했고, CCTV를 통해 저유소 전체를 관제하는 통제실에서는 1명밖에 근무자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업무를 보는 와중에 화재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차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넓게 활용되는 CCTV가 갖고 있는 문제에 인력 부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KT 아현지사 지하통신구 화재로 드러난 통신망 작동불능 사태는 ‘초연결’ 사회로 나아간다는 네트워크 기반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화재로 서대문구와 중구, 마포구 등 서울시 5개 구 일대에 광범위한 통신장애가 발생하면서 인근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용하는 CCTV 회선 중 일부도 먹통이 됐다.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보안용 CCTV 회선을 제공하는 KT와 같은 통신서비스 업체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심각한 경우 국가중요시설을 포함한 핵심시설의 보안에 구멍이 뚫릴 여지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CCTV가 화재와 같은 사고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감시용으로 쓰이지만 정작 화재로 회선이 녹아버리면 무용지물이 되는 역설은 늘 잠재돼 있다고 관련업계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철도 등 주요 인프라와 시설에 운용되는 CCTV를 납품하는 업계의 한 관계자는 “CCTV 회선 역시 통신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CCTV용 회선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목적의 통신회선이 같은 경로로 지나갈 때가 많기 때문에 통신망의 두절은 관련업무 전반을 마비시킬 정도로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KT 아현지사 화재에서도 불에 탄 광케이블 망은 비교적 빨리 복구됐지만 구리선을 이용한 통신망은 복구가 늦어 이용자들의 피해는 더 커졌다. KT가 보안용으로 제공하는 전용회선 역시 지국 간 연결은 광케이블로 이어져 있어도 개별 기관이나 업체와 지국이 연결될 때는 구리선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 같은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때문에 도시형 재난이 벌어질 때는 무엇보다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비책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KT 아현지사 화재를 비롯해 경기 고양시 백석역 일대에서 온수관이 터져 1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일대 온수 공급이 중단된 사고가 벌어진 것에도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보완조치가 미흡했다는 문제가 공통적으로 지적됐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관리 개념으로 보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요인 때문이라고 쳐도 피해가 확대되는 부분은 대부분 대비책 소홀로 즉각 대응과 수습에 나서지 못해 2차 피해가 커지는 데서 나타난다”며 “도시 기능의 발달로 한 분야의 사고가 다른 분야에까지 여파를 불러 피해가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렇게 중첩되는 피해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와 경기 고양시 백석역 온수배관 파열사고는 모두 지하로 통과하는 인프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다. 통신선과 열수송관을 포함해 전선과 수도 등 국가안보와 국민 생활에 모두 필수적인 기반설비가 한 곳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피해는 다방면으로 확산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 지하공동구를 관리하는 책임소재가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와 지자체, 공기업 등에 분산돼 있기 때문에 관리 전반을 담당하는 주된 통제기구가 없다. 갑작스러운 안전문제에 대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처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국민 생활 기반설비 한 곳으로 지나가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지하공동구는 200만㎡ 이상의 면적에 도시를 개발하는 경우 필수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다. 현재 지하공동구가 설치된 지역은 전국에 30곳이 있고 서울에만 7곳에 설치돼 있다. 전력과 수도, 통신 외에도 쓰레기 수송을 위한 관로 등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가스관이나 하수도관도 추가로 설치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는 물론 특정한 의도를 가진 테러나 공격이 일어날 경우 한 방에 도시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급소인 셈이다. 좁은 터널 형태로 도시 내부 곳곳으로 그물 같은 모양의 통로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특히 주요 기관과 기업, 그리고 인구가 밀집한 서울에서 공동구의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가경제가 한동안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지하공동구를 관리하는 일차적 책임은 지자체에 있지만 통합방위법 상의 국가중요시설이기도 하므로 서울의 경우 전담 방위임무를 맡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방어에 나설 정도로 핵심시설이다. 여기에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국토부와 행안부가 담당하는 구조로 대응체계가 갖춰져 있다. 하지만 KT 아현지사 화재는 여러 관로가 함께 지나는 공동구가 아닌 단독구였다. 통신망 화재 피해 외에 다른 부분으로 피해가 확산되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민간업체가 단독으로 사용하는 이런 단독구에서의 사고는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다. 규모가 큰 지하공동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이들 단독구는 관계부처나 기관도 전체 현황을 파악하기 어려워 비슷한 사고가 재발할 우려도 여전히 남아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고 발생시 피해가 크게 확산될 수 있는 국가중요시설과 주요 인프라에 대해서는 비슷한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예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배관 노후 문제의 경우 문제가 없는 배관이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배관을 교체하도록 하는 등 비용을 아끼지 않고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4&art_id=201812101539031#csidx47a2be23764f0c59dc463bd5523f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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